삼일중앙교회-생명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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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만 생각하시는 예수님 2011-04-10 13:28:47
kch2006
제목: 십자가만 생각하시는 예수님
본문: 요 6:12-15(신약 152쪽)           4월 10일 16, 367, 194, 147, 200, 193, 211
일시: 2011. 4. 3. (주일 낮 예배), 삼일중앙교회, 15, 496, 365, 147, 82, 88, 93, 367

요 6:12 저희가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 두 바구니에 찼더라 14 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15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예수님께서 무리를 보시고 측은히 여기시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무리들은 주님을 억지로 자신들의 왕으로 삼으려 한 것입니다. 오병이어로 오 천명이나 넘는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자신들의 왕으로 삼고 주님을 높이고 영광을 돌리려 한 것입니다.

오늘로 말하면 경제 문제를 해결한 것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를 간단히 해결하는 것을 보고 아 이 분이 우리가 기다리고 있던 그 선지자인가보다 생각한 것입니다. 아직 주님의 때가 아니고 영광을 받으실 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보이는 표적에 환호하였습니다.

마 14:22-23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23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사람들은 자신이 행한 일을 보며 영광을 받기 원하고 남들이 알아주길 원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오히려 그 자리를 피하시고 다시 산으로 가셨습니다. 산으로 가신 이유는 기도하러 가신 것입니다. 마음이 착잡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는데, 백성은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신 이유는 보내신 아들을 믿음으로 영생을 주시기 위함인데, 무리들은 이를 깨닫지 못하고 눈앞에 보이는 떡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마음을 아셨습니다. 따라서 자리를 피하시고 한적한 곳에 가셔서 자신이 앞으로 행할 일들을 놓고 기도하셨습니다.

요 6:26-2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27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요 6:3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마태복음 4장을 보면 예수님이 마귀에게 시험 당하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귀는 “이 돌로 떡을 만들라”라고 주님을 시험합니다. 사람들은 돌로 떡을 만드는 이를 따르고 환호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 4:3-4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요한복음 6장은 오병이어의 기적 뿐 아니라 제자들의 반응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하늘로부터 온 산 떡, 생명의 떡”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주님을 따르던 많은 제자들의 반응은 갈라지게 됩니다. 믿고 받아 드리는 자들과 믿지 못하고 떠나는 자들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모습이 그렇습니다. “현실의 떡이 더 중요하냐 아니면 영원한 생명의 떡이 더 중요하냐”, 그 선택은 여러분이 할 것입니다.

요 6:64-71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군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65 또 가라사대 이러하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66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67 예수께서 열 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69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 7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 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71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저는 열 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

이 사건은 후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도 적용됩니다. 주님이 골고다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시고 죽으신 일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성취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임을 믿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로 갈라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오실 메시야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눈앞에 보이는 떡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영원한 양식을 사모하며 살아가는 자들의 차이입니다.

1. 주님이 피하신 이유

마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가장 낮고 낮은 자의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복종함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자신을 대속물로 내어 주시고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빌 2:5-11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사도바울은 빌립보 감옥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오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비울 때, 채워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스스로 비우고 종이 될 때, “그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 예수가 “기름 부음을 받은 자” 메시야로 높임을 받은 것을 보았습니다.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얻으시고, 모든 자들이 그 이름 앞에 무릎을 꿇고, 경배를 드립니다.

“비워야 채울 수 있습니다.” 주님을 높이길 원하는 백성들을 피하신 이유입니다. 비움이 없이 채움이 없고, 주님이 바라보시는 십자가의 죽음이 없이는 영광의 부활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삶 가운데서 실천해야 합니다. 채우면 채울수록 부패합니다. 비우면 비울수록 새로워지고 생명력이 있습니다. 교회와 성도들이 잊지 말아야 될 주님의 모습입니다.

주님은 아직 백성들의 영광을 받으실 때가 되지 않으셨습니다. 지금 주님이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시고 대속물로 자신을 내어 주시는 일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눈앞에 보이는 떡이 더 중요한 일입니다.

마 16:21-24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베드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은 베드로였지만, 지금 눈앞에 보이는 영광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앞으로 예루살렘에 올라가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의 죽음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고난이 아닌 영광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셔야만 합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믿으면 잘 되고, 축복 받는다.”라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이 그 백성을 피해 산으로 가신 이유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빌 1: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딤후 1:10-12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11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12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롬 8:17-18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히 5:8-9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9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당하는 고난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성도들은 지금 이 땅의 떡이나 영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서 이루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받으신 고난을 통해 모든 자의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성도들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의 길을 가야 합니다. 이 길은 고난의 길이고, 십자가의 길입니다.

주님이 환호하는 백성을 피하신 이유는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앞에 놓여 있는 고난과 십자가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오셨고, 그 십자가만을 생각하고 바라보십니다.

2. 주님이 산에 가신 이유     4월 10일 16, 367, 194, 147, 200, 193, 211

주님이 산에 가신 이유는 기도하시기 위함입니다. 그 기도는 장차 받으실 고난과 십자가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입니다. 주님은 언제나 이것을 기억하셨고 염두에 두셨습니다.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눅 6:6-12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사 가르치실새 거기 오른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7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송사할 빙거를 찾으려 하여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가 엿보니 8 예수께서 저희 생각을 아시고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한가운데 서라 하시니 저가 일어나 서거늘 9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멸하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며 10 무리를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저가 그리하매 그 손이 회복된지라 11 저희는 분기가 가득하여 예수를 어떻게 처치할 것을 서로 의논하니라 12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맟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안식일 논쟁 가운데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생각을 알고 계셨습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멸하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라고 물으시고 손 마른 자의 손을 고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죽일 것인지를 생각하고 있었고, 그 빌미를 찾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이 때도 하나님께 밤이 맞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자신을 옥죄어 오는 사악한 자들의 생각과 마음을 아시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언제나 자신의 문제와 어려움을 하나님께 상의 하였습니다. 여러분과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 앞에서 좌절하고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상의하러 나가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렘 29:11-1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12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13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시 39:12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

시 86:6-7 여호와여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7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께 부르짖으리니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이다

누가복음 9장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는 대답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그리스도입니다.”,“주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고백입니다.

눅 9:18-24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더니 물어 가라사대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19 대답하여 가로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라, 더러는 옛 선지자 중의 하나가 살아났다 하나이다 2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니 21 경계하사 이 말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명하시고 22 가라사대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24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주님은 경계하시고 장차 당하실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 부활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따를 제자들의 삶의 모습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이후에 사랑하는 제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산에 올라 기도하셨습니다. 변화산 사건입니다.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기도 제목은 무엇일까?

눅 9:28-31 이 말씀을 하신 후 팔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시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29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30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31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할새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기도 제목은 예루살렘에서 별세입니다. 영광 중에 나타난 모세와 엘리야는 예수님께서 장차 당하실 고난과 골고다 십자가에 대해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결국은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 땅에서 행하실 일과 겪으실 일들을 생각하시며 십자가를 바라보십니다. 영광 가운데 주님은 십자가를 생각하고 계신 것입니다. 곤하게 졸던, 베드로는 “주님께 여기가 좋사오니, 초막 셋을 지어 주님께 영광을 돌리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눅 9:32-33 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곤하여 졸다가 아주 깨어 예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더니 33 두 사람이 떠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되 자기의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

예수님은 지금 자신의 죽음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중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주님의 고난과 십자가 그리고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하길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보이는 현상과 영광만을 추구하면 고난의 십자가 예수님을 놓치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 상태입니다.

졸며 현실에 안주하길 원했던 베드로는 후에 성령 받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예전에 내가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을 깨닫지 못할 땐, 깨어 기도하기 보다는 잠자고, 졸았습니다. 그리고 많은 실수를 하였고, 주님을 부인하기도 했습니다.

벧전 4: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이제 믿음의 성도들에게 권면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제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이 심판주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나와 같은 실수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앞에 두고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그때마다 졸고 잠들어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나태함과 게으름, 깨어 기도하지 못하는 것은 예수님의 마음과 그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시대의 급함을 깨닫고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로서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바라보며 기도하신 것처럼, 여러분들도 성령 안에서 무시로 깨어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셔야 합니다.

엡 6:18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소망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푯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자들은 어떤 환난 가운데서도 흔들림이 없이 주의 길을 갈 것입니다.

예수님은 환호하며 자신을 왕으로 삼으려는 백성들을 피해 산으로 피하셨고 그 곳에서 자신이 당하실 십자가와 고난을 생각하며 묵묵히 기도하셨습니다.

이제 우리 자신을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환호하며 영광 받는 것을 좋아 하십니까? 주님은 마귀의 시험 가운데, 경배하면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다 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하셨습니다. 그것은 유혹이고 독배입니다. 지금은 좋을지 몰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오셨고, 십자가만을 생각하며,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과 저는 주님을 따르는 제자입니다. 주의 길을 가는 자들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십자가를 바라보며, 주님이 흘리는 보혈의 그 길을 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바라보며 기도하셔야 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깨어 기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주님이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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