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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대예배 목사님 말씀 동영상을 수록하여 하나님과의 깊이 있는 말씀의 체험과 은혜를 한 주간도 듣고, 깨달으면서 성령의
함께하심을 한주간도 누리며, 성도들의 영적인 성장을 위한 말씀 동영상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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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언약성취(3) |
2008-09-21 16:25: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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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h2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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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나님의 언약 성취(3)
본문: 시 78: 51-55(구약 859쪽)
일시: 2008. 9. 21(주일 낮 예배), 삼일중앙교회, 41, 197, 211, 460(3), 214, 212, 217
시 78:51 애굽에서 모든 장자 곧 함의 장막에 있는 그 기력의 시작을 치셨으나 52 자기 백성을 양 같이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에서 양떼같이 지도하셨도다 53 저희를 안전히 인도하시니 저희는 두려움이 없었으나 저희 원수는 바다에 엄몰되었도다 54 저희를 그 성소의 지경 곧 그의 오른손이 취하신 산으로 인도하시고 55 또 열방을 저희 앞에서 쫓아 내시며 줄로 저희 기업을 분배하시고 이스라엘 지파로 그 장막에 거하게 하셨도다
오늘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언약의 말씀 중 세 번째 성취과정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것은 “정령 알라 네 자손이 이방의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찌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네 자손은 사대만에 이 땅에 돌아 오리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다시 사대만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동안의 언약의 성취과정을 보면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수 밖에 없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밖에 없습니다.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는 야곱을 이끄시기 위해 기근과 한 사람 요셉을 앞서 보내시고, 애굽의 통치를 같은 혈통인 셈족으로 만드신 하나님! 천지를 창조하시고 세상의 역사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통해 야곱은 드디어 애굽의 고센 땅에 정착하게 됩니다. 그 곳에서 이방의 객 생활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 요셉과 그 형제 및 그 시대의 사람들이 죽자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탄압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셈족인 아닌 함족 계통의 애굽인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이스라엘의 생육이 번성하고 강대함에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애굽은 이스라엘을 탄압하기 위해 두 가지 정책을 펼치게 되는데 그것은 첫째는 이전보다 더많은 고역과 역사에 동원시키는 것, 둘째는 산아 제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을 잊고 있어도 하나님의 인간 구원의 계획과 섭리를 진행하시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준비되어진 것이 열 가지 재앙과 모세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의 학대가 심해지자 하나님과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기도 소리를 들으시고 응답하셨습니다. 드디어 이스라엘은 많은 재물을 갖고 애굽으로부터 탈출하게 됩니다. 이 모든 과정이 인간의 생각이나 노력은 배제되어 있고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만의 역할이 나타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구원받은 것으로 우리의 일은 끝난 것인지,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사건에서 요단을 건너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통해 구원받은 자들의 삶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구원이라고 하면 한 가지 구원만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출애굽과 광야 생활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될 것입니다.
구원은 한 가지가 아니라 세 가지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그 첫째는 우리가 알고 있는 기본적인 구원인 중생의 구원입니다. 둘째는 이스라엘의 광야에서의 삶과 같은 성화의 구원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의 기업 분배인 영화의 구원이 있는 것입니다.
첫째로 중생의 구원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말하고 있는 “나는 구원받았다”는 말은 중생 구원입니다. 이 구원은 하나님이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신 구원입니다.
엡 1:4-7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요한복음 15:16을 보면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다” 즉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그리스도의 사랑안에서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택하여 아들로 삼으시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구원하신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유월절의 어린양의 피를 문지방과 문설주에 바름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통해 구원받은 것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대언하게하신 그 말씀에 순종할 때에 이스라엘은 구원받았습니다. 그 구원은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애굽인과 타민족에게도 동일한 사건이었습니다. 문지방에 어린 양의 피를 바른 곳은 구원의 손길이 펼쳐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애굽의 처음 것을 치심으로 이스라엘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향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홍해를 건넘으로 물세례를 받았다고 바울은 고전 10:2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고전 10: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은 바로 지금 우리의 모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여 구원받고 세례를 받은 우리의 모습인 것입니다. 중생의 거듭남을 통해 구원받은 우리가 이제는 성령의 역사를 따라 옛 사람을 십자가 위에 못 박아 버리고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엡 4:22-24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새 사람을 입으라
이스라엘의 광야의 생활은 유혹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비어버려야 하는데,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하며 불평 속에서 살아간 옛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두번째 구원은 성화의 구원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이끄시고 낮에는 구름 기둥과 밤에는 불 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홍해을 건너면서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과 이사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그들의 모습을 우리의 신앙에 비쳐 보니까 얼마나 흡사한지 모릅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받고 세례를 받을 때의 감격은 이루말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은 참으로 어린 아이와 같습니다. 그래서 어린 유아와 같이 행동하지 않으셨습니까? 이스라엘도 마찬가지로 어린아이와 같이 행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광야 생활을 시작하면서 구원받은 그 감격도 잠시이고 불만과 불평을 늘어 놓기 시작합니다.
첫번째 이스라엘의 원망은 마라의 썩은 물이었습니다.
그들이 홍해를 건너 사막의 황량한 길을 물을 구하지 못한 채 마라에 도착하게 됩니다(출 15:24). 그러나 마라의 물은 썩어서 도저히 마실 수 없게 되자 그들은 모세를 향해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이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명하여 한 나무를 지시하고 물에 던지라고 명하십니다. 그 물은 곧 달게 되었습니다.
두번째 이스라엘의 원망은 먹을 것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출 16:2-3 이스라엘 온 회중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하는도다
참으로 안타가운 일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구하여 달라고 울브짖으며 기도할 때와 지금 애굽에서 탈출하여 구원받은 이스라엘의 모습은 너무 나도 다릅니다. 바로 우리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즉시 그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보내주십니다. 우리의 신앙이 어릴 때에는 우리의 원망과 불평 그리고 우리의 부족함을 즉시 채우 주십니다.
세번째 이스라엘의 원망은 르비딤에서의 물이었습니다.
출 17:1-7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가로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거기서 백성이 물에 갈하매 그들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생축으로 목말라 죽게 하느냐,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그들이 얼마 아니면 내게 돌질 하겠나이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가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하수를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내가 거기서 호렙산 반석 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니 너는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그가 그곳 이름을 맛사라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닌가 하였음이더라
이스라엘 백성이 르비딤에 진을 쳤으나 마실 물이 없자 또 다시 모세를 향해 원망과 모세를 향해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고 다투게 됩니다. 그 때 하나님은 이들에게 호렙산 반석을 치게 하시고 물을 주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믿음이 연약한 어린 아이와 같은 이스라엘에게 앞으로 광야에서 사는 동안 수없이 많은 전쟁을 치룰 것인데 그 전쟁의 연습경기와 싸움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알려 주십니다. 그 전쟁은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아말렉 전투입니다(출 17:8-16).
그 전투는 참으로 신기한 전투였습니다. 그 곳에는 네 사람이 등장합니다. 모세와 아론과 훌과 여호수아입니다. 그 전쟁의 승패는 모세가 손을 들고 있으면 이기고 내려 오면 지는 전쟁이었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전쟁입니다.
그러나 이 전쟁은 이스라엘의 광야에서의 삶과 약속의 땅 가나안 정복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전쟁이라고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앞으로 구원받은 너희가 행할 전쟁의 모습은 너희의 칼과 방패로하는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승리할 것이라는 예고편이었습니다. 현재 우리의 삶에 있어서의 영적 전투도 이와같습니다.
우리의 노력이나 지혜로 싸울 때는 백전 백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 우리의 영적 전투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면서 홍해를 건너 신광야에서 여러가지 원망과 불평 그리고 모세와 다투기까지 하면서 시내산까지 오게 됩니다. 이때까지는 이스라엘의 신앙이 어리기 때문에 그리고 구원 받은지 얼마되지 않아 어린 아이와 같은 그들을 향해 하나님은 그들의 불만과 불평을 받아 주십니다. 그래서 물이 쓰면 달게하시고, 고기와 떡을 그리워 하면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시고, 물이 없으면 반석을 쳐서 물을 내 주십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어릴 때에는 하나님께 원망하고 불평하면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를 감싸 주시고 우리와 놀아 주십니다. 그러나 신앙이 성장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드디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임재하고 계신 호렙산에 다달았으며 그 곳에서 모세를 통해 하나님은 율법과 성막을 주십니다. 이 때부터 상황은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율법과 성막을 받은 이스라엘에 대해 하나님은 더 이상 어린 아이로 취급하시지 않습니다. 어린아이 같을 때는 그들의 원망과 불평에 대해 다 들어주셨지만 신앙이 성숙한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서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을 때는 가차없이 죽여버리십니다.
바란 광야 가데스의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여호수아와 갈렙 그리고 20세 미만의 어린들만이 들어 가게 됩니다. 그 사건은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가나안 정탐 사건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고 끊임없이 그 언약의 말씀을 통해 인도하시고 준비하신 하나님을 의심하고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신앙시절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하나님으로부터 율법과 성막을 받은 성숙한 신앙인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광야에서 불평하고 원망할 때마다 하나님은 그들을 불과 전염병과 지진 등을 통해 이스라엘을 징벌하시기 시작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은 하나님의 심판의 유예 기간이고 어린 아이들은 양육의 기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40년간을 기다리렸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모든 이적을 행한 것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내가 전염병으로 그들을 쳐서 멸하고 너로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민 14:11-12). 하나님의 이러한 노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믿지않고, 하나님의 구원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시 78:10-22).
시 78:17-22 저희는 계속하여 하나님께 범죄하여 황야에서 지존자를 배반하였도다, 저희가 저희 탐욕대로 식물을 구하여 그 심중에 하나님을 시험하였으며, 그 뿐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여 말하기를 하나님이 광야에서 능히 식탁을 준비하시랴, 저가 반석을 쳐서 물을 내시매 시내가 넘쳤거니와 또 능히 떡을 주시며 그 백성을 위하여 고기를 예비하시랴 하였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듣고 노하심이여 야곱을 향하여 노가 맹렬하며 이스라엘을 향하여 노가 올랐으니, 이는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며 그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한 연고로다
참으로 이스라엘은 옛 사람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끊임없이 종살이 하던 애굽을 동경하고 돌아 가자고 이야기합니다. 그 때마다 하나님의 진노가 있게 되고, 그들이 회개할 때 하나님은 용서하시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은 그 진노를 여러번 돌이키신 것을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그들의 반석이시요 지존하신 하나님으로 구속자임을 기억하였지만, 그러나 그들은 입으로 아첨함과 거짓을 말하였습니다.
시 78:35-37 하나님이 저희의 반석이시요 지존하신 하나님이 저희 구속자이심을 기억하였도다, 그러나 저희가 입으로 그에게 아첨하며 자기 혀로 그에게 거짓을 말하였으니, 이는 하나님께 향하는 저희 마음이 정함이 없으며 그의 언약에 성실치 아니하였음이로다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은 하나님의 참으심과 기다림의 시기였습니다. 하나님은 그 선택한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도 낙오되지 않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길 원하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유월절 사건을 통해 구원받았고, 성숙하지 못할 때에는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위로와 만족을 받았지만 성숙한 이스라엘은 오히려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은 그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성화의 단계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연단시키시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사람과 상급을 받을 사람을 추려내셨습니다.
빌 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아니라 더욱 지금 나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예수를 믿고 구원받고 세례를 받았으니 이제 하나님 나라에서 영광스런 삶을 살겠지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구원과 홍해를 통해 물세례를 받았지만 그들은 광야에서 원망과 불평 때문에 죽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믿고 나의 반석이며 지존하신 하나님을 믿을 때에 약속의 땅 가나안 즉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땅의 분배 즉 상급을 받아야 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구원 받은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천국을 향해 나가는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천국으로 향하는 길은 행함의 길입니다. 살아 있는 믿음과 역동적인 믿음입니다. 정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 역사하는 믿음이 있을 때, 천국에 들어 갑니다.
우리는 참으로 많은 착각을 하고 있는데 교회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기독교인이고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구원받고 세례받은 교인이고 교회에 수십년간 다녔서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은 우리는 이제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고 성령의 인도와 역사하심을 따라 우리의 옛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박아 버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원망하며 사탄의 유혹을 따라 애굽을 생각하듯 사탄의 올무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게됩니다.
따라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성령의 역사와 인도를 따라 우리 옛 모습을 벗어버리고 말씀을 사모하며 갓난아이가 젖을 사모하듯이 신령하고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우리의 영이 자라나 간난아이와 같은 신앙에서 벗어나 성숙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그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원합니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의 영화의 구원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 나라에서의 상급입니다. 드디어 이스라엘은 요단강 동편에 진을 치게 됩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시종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십니다.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수 1:2)의 말씀입니다.
모세는 요단강 동편에 이르자 자신은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 갈 수 없음을 알고 그 이스라엘 자손을 모아 그동안의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에 대해 회고하면서 한 가지를 당부하는데, 그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는 신명기를 통해 계속해서 순종할 것을 당부하고 네 조상들이 광야에서 죽은 것은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고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죽었음을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각 지파대로 땅의 경계를 정하여 나누어 줄 것을 여호수아에게 명령합니다.
신 11:1-9에서 모세는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그 직임과 법도와 규례와 명령을 항상 지키라” 고 말하면서 너희가 이를 지키면 세 가지 축복이 있는데 “첫째, 너희가 강성할 것이고, 둘째, 땅을 얻을 것이고, 셋째, 너희 조상에게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라고 설교합니다.
드디어 이스라엘은 요단을 건넜고 하나님의 약속하심에 따라 각 지파대로 기업인 땅을 분배하여 그들에게 나누어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우리를 부르셨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신 일을 통해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의 칭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의 상급을 위해 우리를 영화롭게 하심으로 인해 우리가 영광의 찬송을 하게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13을 보면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굳게 지키며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 때까지 견딤으로 영화로운 하나님 나라의 상급을 받기 원합니다.
때로는 우리의 삶이 힘들고 어려움이 닥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을 때 그들이 비록 유월절 사건으로 구원받고 홍해를 통해 세례를 받았지만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어간 모습을 통해 우리의 신앙을 보다 더 견고히 하여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규례와 법도를 잘 지켜 우리에게 약속된 하나님 나라의 상급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창 12:1-2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창 15:13-16 정령 알라 네 자손이 이방의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찌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네 자손은 사대만에 이 땅에 돌아 오리라
시 105:7-10 그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라 그의 판단이 온 땅에 있도다, 그는 그 언약 곧 천대에 명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하셨으니,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이며 이삭에게 하신 맹세며, 야곱에게 세우신 율례 곧 이스라엘에게 하신 영영한 언약이라
언약의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이루시고 성취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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